이 세상은 죄인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경쟁과 뇌물, 속임수와 사기, 자기를 위한 이익과 성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불공정한 세상에서 살아가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세상 사람들처럼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풀어나가는데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15절 누구든지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 어떻게해야 당신처럼 참 소망을 가질 수 있나요? 누군가 여러분께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짧은 시간에 우리 속에 있는 참 소망을 전달해 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17절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말씀합니다. 그동안 우리들이 알고있던 것과 다르지 않나요? 너무나 많은 설교와 가르침들이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룬다라고 전하고, 우리들은 그렇게 알고있기 때문에 선을 행하다 고난을 받으면 낙심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고난 그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그 고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죄 사함과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19-20절은 난해 구절 중의 난해 구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임 당하셨을 때, 노아 시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어 옥에 갇혀있는 영혼들에게 선포하셨다 했는데, 이것이 구원을 위해 전도하신 것인지, 노아가 믿었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며,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 구원자 되심을 선포하셨다는 뜻인지 그 사이에서 논쟁이 참 많습니다. 무엇이 맞는가에 대해서는 성서학자들이 지속적으로 연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요?
노아 시대에 8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살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신들을 믿고,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과는 노아 홍수 때 심판받은 사람들처럼, 심판받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예수님을 전하는데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난까지는 아니더라도 기꺼이 손해보는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
나 중심적인 생각과 삶의 모습에 빠져있어서, 나만 힘들고 억울하다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주를 위해 충성하고 수고하는 것, 그 자체에 감사하며 만족하는 믿음을 소유하게 하옵소서. 소망을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시어, 주변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영혼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생명의 전달자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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