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을 위로하기 위해서 온 세 번째 친구인 소발이 욥이 한 말을 듣고 대답을 합니다. 이미 위로하려고 온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욥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밝히는 논쟁으로 번져버렸습니다. 소발은 욥에게 말이 참 많다고 하면서 말 많은 사람치고 의로운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소발의 말은 편견이지 사실이 아닙니다. 설령 자신의 죄를 변명하는 사람들이 말이 많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 많으면 의롭지 않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없습니다.
소발은 욥이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함은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죄를 잊게 하셨기 때문이지 죄가 없는 것이 아니며 이것이 하나님의 오묘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너의 죄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신 것일 진데 너는 어찌 죄가 없다 하는지,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징계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소발은 욥이 하나님께 대해서 모른다고 말하면서, 소발 자신은 하나님께 대하여 아주 잘 아는 것처럼 말합니다. 소발처럼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지도 못하면서 남발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충성한다면서 믿음의 사람들 간의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자신의 마음 속의 소리인지, 하나님의 뜻인지, 사탄의 속삭임인지 확실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곳에는 죽었던 영이 되살아납니다. 낙심된 영혼이 새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길 원한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 가운데 나의 유익을 구하거나 나의 영광, 나의 자랑이 들어가면 안됩니다.
나는 낮아지고 예수님께서 높아지셔야 합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섬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에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 섬기거나 멈추거나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과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충성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께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알려고 노력을 했는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알고는 싶어했는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대해 더 잘 알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게하옵소서.
우리들이 행복한 삶,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난 날들의 아픈 경험들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면 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정말 잊은 줄 알고 잊고 살았는데, 가만히 지나온 삶의 속 안을 들여다보니 그 아픔의 기억들이 끊임없이 나의 삶 속에서 역사하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픔은 잊어버린다고해서 해결되
시편 기자는 헐벗은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기도를 업신 여기지 않으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우리들이 기도할 때 어떤 때에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기도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에는 내 기도를 듣고는 계시나? 하는 의구심이 들때도 있고, 또 어떤 때에는 내 모습이 너무도 부끄러워 기도가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이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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