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친구들의 정죄에 대해 욥은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의 취지를 생각하고 나의 말을 좀 들어달라, 그러면 오히려 너희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 말합니다. 대화를 할 때 가장 힘든 것은 상대방이 내가 하는 말은 들으려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싶은 말만 하려 할 때입니다. 자녀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것,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경청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도 경청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의인은 하나님께서 정죄하지 않으며, 악인은 하나님께서 정죄하신다. 악인의 형통은 잠시일 뿐 반듯이 하나님께서 정죄하신다, 그리고 의인은 형통케 하신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욥은 그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악인이 죽을 때까지도 형통하고 그 형통이 대를 이어가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악인만이 잘되는 것이아니라, 그들의 자녀들까지도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면서 즐겁게 행복하게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다. 뿐만 아니라, 악인들은 말하길 이미 충분히 잘 살고있으니 하나님에 대해 알 필요도 없고, 하나님을 알고 싶지도 않으니 하나님께 우리를 떠나 달라고 한다.
하나님이 필요없다 말하는 악인의 형통함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반대로 말한다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의인이 당하는 고난도 설명할 길이 어렵다라고 말하면서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오늘 본문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경각심을 주면서 동시에 위로를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내 삶의 환경이 안락하고 좋은 것, 아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을 근거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 생각해서도 안되며, 내 삶의 환경이 어렵고, 질병으로 고통 당하고, 기도해도 응답이 늦어진다 할지라도 그것을 근거로 죄 때문이다라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믿음 생활을 잘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인가, 아닌가는 하나님과의 관계로 결정됩니다. 믿음, 영성은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입니다. 욥은 16절에서 악인들의 행복이 그들의 손안에 있지 아니하니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멀구나라고 말합니다. 악인의 형통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의인의 고통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나는 악인의 형통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힘들다보니 천국에서 조금 못살아도 좋으니 이 세상에서 좀 편하게 살고 싶다라는 분이 계십니다.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하지만, 욥에 비하면 그 분은 아주 잘살고 계셨던 분입니다. 하나님의 징계, 버림받은 자처럼 보이고, 삶의 고통 속에서도 악인의 형통함을 따르지 않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붙잡겠다는 욥의 믿음이 올바른 믿음이며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믿음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상황만 바라보고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게 하옵소서. 힘들고 어려워도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게 하옵소서. 고난 가운데 있어도 끝까지 하나님만을 붙잡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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