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라임 산지의 미가는 어머니가 은 천백개를 잃어버림으로 저주한다는 말을 듣고 은 천백 개를 어머니께 드립니다.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복 주시기를 원한다 하면서 아들을 위해 은 이백으로 우상을 만들어 미가의 집 산당에 두고, 제사장 옷인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어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겠으나, 6절 말씀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라고 기록합니다. 왕이 없다는 것은 그들 마음에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았다는 뜻이며,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베들레헴의 한 청년 레위 사람이 경제적인 삶이 어려워 이리저리 다니다가 미가의 집까지 오게 됩니다. 미가는 너가 우리 집의 제사장이 되어준다면, 매년 은 열 개, 옷 한 벌과 먹을 것을 주겠다하자, 그 레위 청년은 미가의 집에 거하며 그 집의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미가는 그를 아들처럼 여겼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일반적인 눈으로 볼 때는 정말 귀한 만남이며 좋은 관계라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아닙니다. 제사장은 어떤 높은 직책의 관료나 부자가 자기 사람처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위해 세우신 직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으로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예물을 드리지 않으므로 가난해진 레위 지파의 사람들이 먹을 것조차 없어 집을 떠나게 되고, 어느 개인의 제사장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제사장을 개인의 제사장으로 삼은 미가나 그렇게 하겠다고 한 레위 청년이나 모두 잘못한 것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복주시기 원하다하면서 우상을 만들고 아들을 제사장 삼으려했던 미가의 어머니, 레위 지파 청년을 개인 집의 제사장으로 삼은 미가, 그리고 미가의 제안을 받아들인 레위 청년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궁극적인 뜻은 같지만, 그들이 사용한 방법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섬김을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실까요?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을 섬기려하고, 하나님께 복을 구하면서도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행동을 하는 오늘 말씀 속의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들의 모습 속에는 이러한 모습은 없는지, 교회를 지키고, 부흥시킨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적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교회의 주인 우리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기쁨으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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