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죄 사함의 침례를 받으려고 침례 요한에게 나왔을 때,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오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독사의 자식들이라 말했을까요? 너무 독한 말 아닌가요? 여기서 우리들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욕심을 부리고, 피해를 주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를 주장하는 모습이 죄인의 모습이며 그 모습이 독사의 자식의 모습이란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독사의 자식의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겠습니다.
그들은 독사의 자식이란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떻게해야 할까요? 라고 묻습니다. 죄인인 것을 알았지만 독사의 자식이란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화가나고 자존심이 상했을까요? 그런데 그들은 죄를 인정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묻습니다. 우리들도 본받아야 할 회개하는 죄인의 모습입니다.
요한은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도 나누라. 옷 두 벌 있는 사람이 옷 세 벌, 네 벌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가난하다.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홈리스에게 돈을 주니, 빵을 사서 옆에 있는 홈리스에게 나누는 것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도움만 받고 도움을 주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스스로 가난하다 하지말고 나눠주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나누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입니다.
군인들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라고 묻자, 강탈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여기라 했습니다. 족한 줄로 여기라는 말씀은 감사하라, 만족하라 입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이 가장 좋은 일이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성실하게 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사람들은 침례 요한이 하는 일을 보고 요한이 그리스도인가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 메시야가 아니라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푸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신발은 샌달이며, 길을 다니면 흙먼지에 땀으로 범벅이 되니 그 신발이 얼마나 지저분했을까요? 그래서 손님이나 주인의 신발의 끈을 푸는 종은, 종들 중에서도 낮은 종의 일이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과 자신을 그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사람들이 높여주는 자리, 인정하는 자리에 섰을 때 그 칭찬과 인정을 우리가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요한은 자신은 물로 침례를 베풀지만, 그분은 성령과 불로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타작마당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실 것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재림의 주로 심판의 주로 오실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지만, 구원받은 성도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물질적, 정신적, 영적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적 가난한 자에게는 예수그리스도를 전해 주어야 하며, 정신적 가난한 자에게는 위로와 쉼을 갖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가난한 자에게는 물질적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모습이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며, 재림의 주, 신랑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부의 모습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입술로만 회개함이 아니라, 삶이 변화되는 회개 자가 되길 원합니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주변을 돌아보며 베풀고 섬기는 모습으로 살게 하시고, 나를 드러내고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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