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신 예수님이 나인성, 성문 가까이에 가셨을 때, 사람들이 성문에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 시신은 한 과부의 하나 뿐인 아들이었으며, 그 장례 행렬에는 많은사람들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과부의 하나 뿐인 아들이 죽었다는 것은 그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전부를 잃었다는 뜻이 됩니다. 또한 많은사람들이 그 장례예식에 함께 했다는 것은 그 과부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선한 행실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아들을 불쌍히 여기신 것이 아니라, 아들을 잃은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울지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울지말라고 하셨을 때 그 여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들이 좋은 곳에 갔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뜻일까? 아니면 너보다 더 힘들고 슬픔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울지 말라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울지말라 하신 것은 죽은 아들을 다시 살려 주시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관에 손을 대시자 관을 맨 사람들이 멈추어 섰습니다. 예수님께서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니 죽었던 청년이 일어나서 사람들과 말도 했습니다. 죽었던 청년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슬퍼하던 장례식은 기쁨과 행복으로 바뀌었으며 사람들은 두려워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났다고 외치면서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돌보셨다고 하였습니다.
육신적 죽음도 이렇게 슬픈데, 영적 죽음은 얼마나 슬픈 일일까요? 육신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도 이렇게 기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데,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요? 죽었던 청년을 살리신 예수님은 영적으로 죽은 자를 살리는 그 기쁨이 넘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위대한 사명을 우리들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들이 슬픔 가운데 있을 때 위로자가 되어 주시고,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에는 도와주고 건져주시는 능력의 손이 되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께 받은 위로와 도움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변에 나누며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들이 행복한 삶,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난 날들의 아픈 경험들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면 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정말 잊은 줄 알고 잊고 살았는데, 가만히 지나온 삶의 속 안을 들여다보니 그 아픔의 기억들이 끊임없이 나의 삶 속에서 역사하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픔은 잊어버린다고해서 해결되
시편 기자는 헐벗은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기도를 업신 여기지 않으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우리들이 기도할 때 어떤 때에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기도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에는 내 기도를 듣고는 계시나? 하는 의구심이 들때도 있고, 또 어떤 때에는 내 모습이 너무도 부끄러워 기도가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이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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