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살아가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사람이 어떻게 자기가 하고싶은 것을 다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라고 말합니다. 그들도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하면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한 발 들여다놓고, 교회에 또 한 발 들여다 놓는 삶 말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셔놓고서도 어떤 것을 결정 할 때면 자기가 하려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 다니면 다닐 수록 믿음생활하는 것이 어렵다라고 말입니다. 믿음 생활이 어려운 것은 아직도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내가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속에서 밀어내고 있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야곱의 모습은 믿음생활 하면서 갈등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의 모습과 너무 흡사합니다. 애굽에서 가져온 양식이 떨어졌는데도 가뭄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애굽으로가서 양식을 사오라고 말합니다. 이미 르우벤이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만 애굽에 가서 양식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지만, 야곱은 르우벤의 말을 무시하고 아들들에게 양식을 가져오라고 한 것입니다.
유다가 대답합니다. 아버지 지난 번에 형 르우벤이 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버지도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자 야곱이 속상해 하면서 그러길래 왜 베냐민이 있다고 말해서 일을 이렇게 어렵게 만드냐 따지듯 말하자, 유다는 우리가 알았더라면 이야기 했겠습니까? 우리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야곱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아들들을 탓하는 모습은 잘못된 것입니다. 만약 야곱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베냐민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야곱도 대답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야곱처럼 어떤 일을 만났을 때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말하면서 왜 그렇게 했느냐,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텐데라면서 마치 자신은 실수나 실패가 없는 사람처럼 말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볼 때 실패나 실수가 없었던 적이 없었나요? 실패나 실수를 한번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누구 때문이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어떻게 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에 촛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유다는 자신의 어린 두 아들을 아버지께 볼모로 잡혀 두겠습니다. 만약 내가 베냐민을 데리고 갔다가 함께오지 않으면, 나의 두 어린 아들들을 죽이소서라고 말합니다. 유다의 마음은 내 사랑하는 두 아들들의 생명을 지키듯이 내 목숨을 걸고 베냐민을 지키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유다의 말을 듣고 마음으로 결단함 야곱은 애굽에 가지고 갈 이 땅의 아름다운 것들 꿀, 유향, 향품, 몰약,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를 가지고 가라, 갑절의 돈도 가지고 가라, 그리고 네 아우 베냐민을 데리고 가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라고 말합니다.
다른 아들들을 살리기 위해 베냐민을 내어 준 야곱의 모습은 그동안의 편애가 끊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 놓는 순간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 놓지 못한다면 세상과 믿음 양쪽에 발을 담가두면서 아~ 힘들다, 믿음생활 어렵다, 교회 다니면 다닐 수록 더 힘들다면서 마치 충성하는 믿음생활을 하는 것으로 인해서 힘든 것으로 착각 합니다. 그렇지만 그 힘든 것은 믿음생활에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힘든 것이 아닌 아직도 내것을 내려놓지 못해서 생겨나는 힘듬, 자기와의 갈등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믿음생활 하면서 인간적인 갈등을 하고 있다면, 신앙의 결단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직도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지 못함으로 인해서 갈등하고 힘들어하고 있지는 안은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내것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잡기를 원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쫓지말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는 일에 쓰임받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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