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부자와 나사로, 작은 소자라도 실족케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리라. 고침받은 10명의 나병환자 중 오직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만 예수님께 감사했다는 우리들이 많이 들었던 말씀들입니다.
관용은 많이 가진 자가 없는 사람에게,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부자가 매일 잔치를 벌이면서도 대문 앞에 버려진 병든 나사로, 부자는 아브라함 품에 안겨있는 나사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에게 선을 베풀지는 않았습니다.
생전에 부자는 나사로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왜 하필 내 집 문 앞에 있는거야, 아니면 그래도 집 문 앞에서 쫓아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난 선을 베풀어 줬다고 생각했을까요? 예수님은 이어서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실족케하면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 스스로 조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소자,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만한 사람이 나로 인해 실족하게 되는 일은 무심결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미워하는 것만이 죄가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죄며, 피해를 주는 것만이 죄가 아니라 선을 베풀지 않는 것도 죄가 되는 것처럼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도 죄가 될 수 있습니다. 판단은 재판관 되시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심판의 결과로 부자는 음부에 가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라면 과연 우리들이 구원받을 수가 있을까? 제자들은 두려워 하면서 예수님께 믿음을 더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이란 어떠한 믿음일까요? 나는 오늘 죽어도 천국 갈 수 있어라는 구원의 확신이 구원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요? 이단에 빠진 사람들과 우상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이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과 같은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없을까요? 제자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구원의 주체를 자기 자신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니 구원받기 어렵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씨앗 중에 아주 작은 겨자 씨 만한 믿음이 있어도 뽕나무 더러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뽕나무가 순종하였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는다면 내 느낌이 아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재판은 하나님께서 하시며, 그 구원을 베푸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 10명을 고쳐주셨지만, 고침받은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께 나아와 감사드린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뿐이었습니다. 나머지 9명 이스라엘 사람들은 은혜를 입고 병 고침을 받아 삶이 나아졌지만 감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선을 행하지 않음이 죄가 됨같이 감사를 드리지 않음도 죄가 됨을 알아야 합니다.
감사는 표현되어져야 하며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말로만 끝내면 안됩니다. 무엇을 왜 감사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려야 할 뿐만 아니라 고침받은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감사를 드렸던 것처럼, 삶과 예물로 표현되어져야 합니다. 감사를 많이 표현할수록 그 혜택은 감사드리는 사람이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관용을 베푸는 너그러운 사람, 사랑이 넘치고 선을 베푸는 사람이란 말을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 있을 때마다 놓치지 않고 감사를 표현하고 늘 기쁨으로 찬송하며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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