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악한 종이 어떠한 종이고 그 죄에 대한 심판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포도원 농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새로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를 받기로 하고 그 포도원을 맡겼습니다. 이 농부들은 주인이 맡겨준 포도원을 잘 가꾸어 주인에게 일정한 세를 주고 나머지는 자기들의 몫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때가 되어 주인은 포도원의 소출 중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종을 보냈습니다. 농부들은 세를 내지 않으려고 종을 때리고 빈손으로 보냈습니다. 주인은 두 번째 종을 보냈지만 농부들은 그 종도 때리고 능욕했습니다. 주인은 세 번째 종을 보냈지만 그 종까지 상하게 하고 내쫓았습니다. 농부들은 주인에게 세를 내지 않고 그것을 자기들이 취하면서 즐거워했습니다.
주인이 와서 악한 농부들의 죄를 물을 수 있었지만, 주인은 그 농부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습니다. 주인의 아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 농부들이 이 아들은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 주인의 아들이 오자 농부들은 세를 바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포도원 전부를 빼앗고자 했습니다. 저 아들이 상속자니 그를 죽이면 이 모든 것이 다 우리의 것이 되리라 생각하고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습니다.
주인이 주는 마지막 기회마저 농부들은 놓치게 되었습니다. 농부들은 자신들이 주인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요? 주인이 보낸 첫 번째 종, 두 번째 종을 때리고 내쫓으면서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으니, 죄에 대해 무감각해져 간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처음에는 벌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주일 예배 처음 빠지면 하나님께 벌 받는 건 아닐까? 두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번 두 번 빠져도 삶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그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고, 주일 예배에 빠져도 무감각해 진다고 합니다. 죄는 우리의 영적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버립니다.
돈 욕심에 사로잡힌 농부들은 주인을 이길 힘도 없으면서 그 아들까지 죽이는 큰 죄를 짓고 맙니다. 그들은 주인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런 무모한 죄를 범하는 것일까요? 바로 욕심입니다.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자기가 갖고 싶은 것에 대해 마음을 빼앗겨 다른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들까지 죽인 것에 대해 주인이 더 참을 이유가 없습니다. 주인이 돌아와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그 포도원을 다른 농부들에게 맡긴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포도원을 차지한 줄 알고 즐거워했던 악한 농부들은 주인의 손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욕심 많고 살인자인 농부들이 자신들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회개하지 않고 그 어리석은 농부들처럼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악한 농부들처럼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내 속에 있는 욕심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 되심을 고백합니다. 내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내 것이 아니라 주인되신 예수님의 것임을 믿고 때를 따라 세를 바쳐야 하듯이 내게 맡겨진 것들로 하나님의 나라 위해 사용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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