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일 (수)
- 코너스톤교회
- 2022년 5월 31일
- 2분 분량
찬송: 595장 나 맡은 본분은
말씀: 고린도전서 14:1-12
제목: 영적 은사의 목적은 공동체의 유익입니다
교회마다 방언과 예언 같은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밤새 철야기도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부작용도 나타났습니다. 방언을 못하면 천국에 못간다. 방언을 언어를 가르치듯 훈련하는 곳도 생겨났습니다. 방언에 대해 필요하다 필요없다. 방언의 은사는 끝났다, 아직도 있다. 성경이 말하는 방언은 외국어다, 방언은 하늘의 언어다. 어떤 것이 맞을까요?
예언도 교회에 덕을 세워야 하는데 은사자들이 오히려 교회의 질서를 깨뜨리고 성도들이 목사님 중심이 아니라 예언하는 사람 중심으로 모여 마치 점을 치는 마음으로 자신에 대한 예언을 듣고 싶어하는 부작용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다보니 차라리 예언하는 은사자가 없는게 교회에 유익하다는 견해들도 나타났습니다. 방언과 예언의 은사 구해야 할까요 구하지 말아야 할까요?
고전 13장은 사랑이 없는 방언과 은사는 다 시끄러운 소리에 불과하다면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14장에서 방언과 통역,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전합니다. 바울은 방언과 예언의 은사가 필요 없다라고 말하려 함이 아니라, 사랑안에서 은사를 구하고 사용하라는 뜻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증거가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하라는 14장 1절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방언과 예언의 유익이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해 줍니다. 방언은 알아듣는 사람이 없고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으로 개인에게 유익합니다. 대표기도를 방언으로 할 경우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므로 통역의 은사를 받고 통역을 할 수 있을 때에만 대중 앞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유익하고, 통역은사가 없이는 하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의 제자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고 복음을 전했을 때 각 지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방언을 말했을 때 그들이 알아들은 것인지, 제자들이 외국어로 말했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14장에서 말씀하는 방언은 확실히 외국어가 아니며 오늘날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방언을 뜻합니다.
기도하는 사람 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기도가 무슨 유익이 있느냐? 신구약 66권 성경이 완성 되었을 때 방언의 은사도 끝났다라는 조직신학적 정의를 내리는 교단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방언의 은사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비밀을 말하는 것으로 개인의 덕을 세우고 개인 신앙생활에 유익하니 모두가 방언을 하기를 원하고, 통역의 은사도 구하라고 전했습니다.
예언은 개인이 아닌 교회의 덕을 세우며, 성도를 권면하고 위로한다고 하면서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한다고 5절에서 전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을 무당이 점을 치는 것처럼 여겨서는 안됩니다. 예언하는 사람이나, 점을 치는 사람이나 자신들의 견해가 아닌 영적 존재로부터 들은 것을 전해주는 점은 비슷하지만 예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점쟁이들의 예언은 악령 귀신이 주는 것이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믿어야 하지만 점쟁이의 예언은 믿으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개인의 신앙생활의 유익을 위해 방언을 구해야 합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분은 통역의 은사를 구해야 합니다. 예언의 은사도 교회의 덕과 성도를 세우기 위해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없는 방언과 예언이 되지 않도록 늘 자신을 더 돌아봄이 마땅합니다. 성령의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안에서 사용되어질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며, 교회가 세워집니다.
사랑의 하나님!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되 오직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질서 안에서 교회의 덕을 위해 사모하며 구하며 사용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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