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5일(수) 마태복음 17장 1-13절 변화산의 영광을 품고 고난의 현장으로
- 코너스톤교회

- 2월 25일
- 2분 분량
영광의 자리는 사람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은 다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광의 자리는 어떤 분위기나 현상, 그리고 사람이 중심이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영광의 자리는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교회를 섬긴다고 했을 때, 하나님의 뜻이 아닌 눈에 보이는 성장,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교회를 세우려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을 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시는데 예수님에게서 태양빛같이 아주 밝은 빛이 나오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본 제자들은 너무나 놀랍고 신비로웠습니다. 베드로는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싫을 정도로 그 자리가 좋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신이 초막 셋을 지을테니 여기서 살자고 했습니다. 그 초막 셋은 예수님, 모세, 엘리야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진심으로 말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진심으로 섬기고, 열심을 다해 섬긴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멈추어야 합니다. 더 열심을 내면 낼 수록 하나님의 뜻에서 더 멀어질 뿐입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광경을 본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에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서기관들의 가르침인 엘리야가 먼저 와야한다는 말씀을 질문합니다. 그 질문의 근거 말씀은 구약성경의 마지막 두 구절입니다. 말라기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엘리야가 먼저와야 한다는 말씀에 대해 예수님은 엘리야가 이미 왔는데,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나서 그 엘리야가 침례요한이었음을 제자들도 깨닫게 됩니다.
변화산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산입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던 산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은 산에서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리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리가 다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고 말씀을 배우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세상에 나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신비로운 경험을 통해 우리들의 믿음은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신비로운 경험은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면 안됩니다.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은혜의 자리를 사모하면서 동시에 사명의 자리도 사모하게 하옵소서. 사명을 놓치는 신비로운 경험을 추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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