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만사람 엘리바스의 말을 들은 욥은 서로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도 얼마든지 너희처럼 똑같이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진 다음에 내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은 똑똑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넘어진 사람에게 넘어질 줄 알았어, 사업이 실패한 사람에게 그렇게하다간 사업이 실패할 줄 알았어, 이렇게 했었어야지, 정말 그렇게 하면 다른 문제 없이 사업이 잘 된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확신할 수 없으면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욥은 만약에 내가 너희와 입장이 바뀌어 있다면, 나도 얼마든지 너희들처럼 말 할 수 있지만, 만약 너희가 나처럼 힘들어 한다면, 나는 너희처럼 판단, 정죄하지 않고, 나의 입으로 너희를 강하게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의 근심을 풀어주었을 것이다라고 4절에서 말합니다. 욥과 친구들의 수준 차이가 확실하게 들어나는 순간입니다.
욥의 친구들의 모습은 죄인을 정죄하는 사탄의 모습이며, 욥의 말은 죄인들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징계하시는 것에 대해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하시는지를 죄가 있다면 깨닫게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나를 힘들게 하시고, 고난 가운데 몰아 넣으시지만,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다 17절에 고백합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기 전에도 어려운 일을 만난 후에도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자로 서 있었습니다. 가축을 빼앗긴 종들을 탓하지도 않았고, 자기를 버리고 떠난 아내를 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누구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생겼다라며 다른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핑계를 대지도 않았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것에 대해 용서받지 못한 것은 죄를 회개함이 아니라, 핑계를 댓기 때문인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누구 탓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합니다.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에 대해 내 생각으로 판단하며 정죄하는 사람과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을 위로하고 힘을 내도록 격려하는 사람 중에서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다른 사람에게 핑계하는 사람과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가는 사람 중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사랑의 하나님!
핑계를 대도 죄가 없어지지 않음을, 문제가 해결되지도 못함을 깨닫게 하옵소서. 입으로 들어가서 몸으로 나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늘 조심 또 조심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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