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예수님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묻습니다. 이 사람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에는 무어라 적혀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면서 얼마나 속으로 뿌듯해 했을까요?
예수님은 그래 너의 답이 맞다 맞아, 너의 대답처럼 살면 영생을 얻게 된다라고 말씀하시자, 그 율법사는 예수님께 옳게 보이려고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조금 전까지 예수님을 시험하려던 사람이 이제는 예수님께 잘 보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칭찬의 위력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죽도록 맞고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거의 죽은 시체 처럼 벌거벗은 몸으로 있었다. 그 곁을 제사장이 지나쳐갔고, 레위인도 지나쳐 갔지만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로 그 상처 위에 붓고 싸맨 후, 그를 가까운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건강한 사람이 이틀 동안 일해야 버는 돈을 주면서 그 사람을 돌봐달라, 만약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돈을 더 주겠다고 부탁을 했다.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 물으시니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라 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너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돌아보아야 할 이웃은 넉넉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나중에 나에게 보답할 수 있는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나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사람, 생명의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이고, 따뜻한 한 마디의 말이 필요한 사람이고, 물질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율법사를 떠나 예수님은 마을로 가시자 마르다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집에서 함께 온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고, 마르다는 사람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식사 시간은 다가오고, 해야 할 음식은 많은데 동생 마리아는 철없는 애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음식을 준비하던 기쁨을 잃어버리고, 불평꾼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를 향한 화가 예수님을 향해 폭발합니다. 예수님 나 혼자 일하는 거 안보이세요? 마리아에게 나를 도우라고 말씀해 주세요. 예수님은 얼마나 안타까우셨는지 마르다의 이름을 두 번 연속으로 부르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여러 가지 음식 준비하느라 힘들지? 잘 할 수 있을까? 제 시간까지 다 준비할 수 있을까? 염려와 근심도 되지, 내가 언제 많은 음식을 해 달라고 부탁했니? 즐거움으로 자원함으로 시작하지 않았니? 할 수 있는 만큼만 기쁨으로 하면 된다. 한 가지만 준비해도 너가 기쁨으로 할 수 있다면 나도 기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마르다의 모습이 있습니다. 충성 봉사하다 시험에 드는 사람이 마르다 입니다. 자기 믿음의 분량대로 교회를 섬기면 됩니다. 언제 믿음의 분량을 넘게 될까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할 때입니다. 자기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지 못했을 때, 믿음이 좋다라고 착각할 때입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섬기는 것은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큰일 납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내가 더이상 드릴 수 없을 만큼 드리는 것이 믿음의 분량대로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내게 좋은 이웃이 있는가, 없는가 찾지 말고, 내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받은 사명, 교회의 직분을 감당할 때 믿음의 분량대로 겸손히 잘 감당하여 기쁨으로 충성 봉사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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