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4일(목) 고전 11장 27-34절: 서로 배려하는 주님의 교회
- 코너스톤교회

- 6월 4일
- 2분 분량
오늘 본문에는 고린도교회에서 주의만찬을 행할 때에 두 가지 측면에서의 배려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보통 상대방을 배려하면 상대방에게 유익이 있고, 배려를 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유익이 없으며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주의만찬은 죄인들을 위해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께 대한 배려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예수님의 희생은 전혀 생각하지도 기념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저 먹고 마시는데 취해서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포도주에 취하듯이 주의만찬을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희생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만찬을 더럽히는 행위는 자기의 죄를 자기가 먹는 것이 되어, 병든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주의만찬을 행할 때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성도가 되어야 겠습니다.
또 하나의 배려는 늦게 참석하는 성도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남의 가게에서 일을 할 수도 있고, 일용직 노동자 또는 어느 집의 일꾼으로 일하는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이 마친 후에야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녁도 먹지 못한채 주의만찬에 참여하러 왔는데 먼저 온 사람들이 빵을 다 먹고, 포도주를 다 마시고 있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마음에 상심이 있었을까요? 교회는 오히려 나중에 믿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은 어느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만을 위함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사랑이었습니다.
높아지고 싶다면 세상에서 높아지면 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철저하게 낮아져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겸손입니다. 바람직한 모습은 세상이든 교회이든 예수님 안에서 겸손한 모습이 최고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헤롯왕이나 빌라도총독,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앞에서는 조금도 머리를 숙이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주의만찬은 아주 작은 전병과 포도쥬스로 행하기에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 없고 목마름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적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 놀라우신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고 죄인되었을 때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시고, 배려해 주신 예수님을 본받아 연약한 자들을 사랑하며 섬겨주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하지 않음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말과 행동에 배려가 있게하여 주시옵소서. 말 한마디에, 행동 하나에 큰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알게하여 주시어 상대방을 배려하는 겸손함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