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0일 (목)
- 코너스톤교회
- 2024년 5월 29일
- 2분 분량
말씀 열왕기상 22:13-28
제목 위기를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하나님께 기도 드릴 때, 이미 내가 원하는 것을 정해놓은 다음에 기도를 드리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때로는 소원하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소경이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 예수님은 들어주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을 때는 다릅니다.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선지자 미가야로부터 하나님의 뜻에 대해 응답을 받으라는 요청은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싸우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여쭈고, 그 뜻대로 순종하자는 것이 여호사밧의 뜻이었지만, 아합은 무조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듣고 싶어했습니다.
아합은 미가야는 늘 자기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는다하면서 불평을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합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목사님의 설교가 왜 이렇게 책망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사는대도 그렇게 들릴까요?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은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아합 왕이 길르앗 라못을 전쟁을 통해서 다시 빼앗으려고하니 미가야 당신도 400여명의 선지자들처럼 전쟁에 나가면 승리할 것이라 말해 주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의외로 목사님들께, 설교는 이렇게 해 주세요, 축복의 설교, 성공의 설교, 죄에 대한 책망은 하지 마세요라는 요청을 한다고 합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전해주세요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미가야는 아합에게 전쟁에 나가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말합니다. 아합은 늘 자신이 하고자하는 일에 반대하고 나쁘게 말하던 미가야가 왠일로 좋게 말하니, 믿을 수가 없어서 몇번이고 다시 확인합니다.
미가야는 왕이 전쟁에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왕이 원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서로 다르다 설명합니다. 왕은 전쟁에 나가 길르앗 라못을 다시 찾아오는 것이나, 하나님의 뜻은 왕이 전쟁에 나가서 죽는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 정말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말하라 하더니 미가야가 진실을 말하자 화를 내면서 미가야의 뺨을 치고, 감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게하라 말합니다.
설교말씀들을 유투브를 통해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귀한 말씀은 우리가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거짓에 속아 잘못된 예언을 했던 400여명의 선지자들은 왜 속았을까요? 이미 그들의 마음에 세속에 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아닌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는 사람의 종들이었습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정말 그것이 맞느냐 확인을 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살 것인가? 사람의 종으로 살 것인가? 나를 위해 살것인가? 하나님을 위해 살 것인가? 큰 문, 큰 길이 아닌 좁은 문, 좁은 길을 걸어야 합니다. 순종의 길은 나를 부인해야 걸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원하는 것을 구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어함은, 구하는 것을 얻고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었을 때, 우리는 행복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것을 받고,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에 쓰임받는 것이 우리들에게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아버지!
우리들이 원하는 것을 구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것을 구하고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이루시길 원하는 일에 우리들을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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