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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0일 (목)


말씀: 요한복음 13:31-38

제목: 예수님의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


일방적인 사랑의 열매는 아름답지 못합니다. 그래서 짝사랑은 슬픈 사랑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게 되면 행복하고 기쁩니다. 가룟 유다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을 아시면서도 다른 제자들과 동일하게 유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수건으로 닦아주셨습니다. 떡을 포도주에 적셔서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예수님의 사랑과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사탄에게 마음을 주었습니다. 유다가 어떻게 할 것을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유다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괴로울 정도로 아프셨습니다.


자녀를 키우다보면, 알면서도 속아줄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다 아셨지만 아픈 마음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예수님은 남아있는 열한명의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십니다. “서로 사랑하라!” 십자가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듯이, 일방적인 사랑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열매가 없습니다. 사랑은 서로 사랑 할 때 비로소 열매를 맺습니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동시에 서로 사랑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더 믿음이 좋은 사람이, 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만약 사랑을 받은 사람이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면서 받을 사랑만을 계속 요구한다면, 어린 아기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사랑을 받았다면 자신도 사랑으로 보답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 사랑을 나눠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사랑을 받기만 해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할 때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까지 사랑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내 힘이 아닌 위로부터 공급되어지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내 속에 충만해야 합니다. 그 능력으로 나타나는 사랑이기 때문에 나를 자랑하거나 높이지 않습니다. 내가 했으니 나에게 보답하라는 요구도 하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까지 사랑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예수님 때문에’ 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아들을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나누며 전파하게 하셔서 온 세상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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