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2일(화) 출애굽기 16:1-21 원망을 통한 응답인 만나와 메추라기
지난주 남미 페루 리마에 계신 선교사님들께 고린도전서 말씀을 전하기 위해 다녀왔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하시는 선교사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만나와 메추라기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를 종종 들어 보았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하나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 기도는 내용적으로 틀리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서 한 가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갔고, 하나님은 어떤 마음으로 그들에게 응답하셨을까요?
오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지 두 달 15일이 되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 사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여러 차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애굽을 떠난 후에는 홍해 앞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홍해 앞에 섰을 때 그들은 먼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넌 지 사흘째 되었을 때 수르 광야의 마라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의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자 또다시 원망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셨고,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제 신광야에 이르렀을 때 먹을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이쯤 되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도 건너게 하셨고, 마라의 쓴물도 단물로 바꾸어 주셨으니 이번에도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 믿고 기다리거나,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또다시 먼저 원망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직접 원망한 것이 아니라 모세와 아론을 향해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의 뜻대로 백성들을 광야로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백성들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하나님의 종들을 향한 원망을 단순히 사람을 향한 원망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결국 그들의 원망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열 가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홍해를 건넜고, 마라의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왜 어려움만 만나면 먼저 원망했을까요? 그들은 힘든 일을 만났을 때 “이 어려움을 어떻게 견디고 극복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보다, 먼저 누군가를 탓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원망했고, 어려움이 생기면 책임질 대상을 찾았습니다. 이쯤 되면 원망이 하나의 습관처럼 보입니다.
사람은 어떤 태도를 반복하다 보면 그것이 삶의 습관이 됩니다. 감사도 습관이 될 수 있고, 원망도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원망이 습관이 되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일에도 불평할 이유를 찾게 됩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해결책을 찾기 전에 먼저 원망할 대상을 찾게 됩니다. 이러한 습관은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백성들의 원망을 들은 모세는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시고,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 그들을 먹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기와 만나를 주실 때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물론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를 기뻐하시면서 주셨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부족했고, 하나님의 종들에게 먼저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지만, 그들의 원망까지 기뻐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역시 살아오면서 셀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응답과 도우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비교할 때 어떻습니까?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합니까? 두려워합니까? 원망합니까? 의심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립니까?
같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는다 해도 원망한 후에 받는 것과 감사하며 믿음으로 기다리다가 받는 것은 다를 것입니다. 원망 가운데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는 것보다 감사 가운데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는 것이 훨씬 더 복된 일입니다. 주는 하나님도 기쁘시고, 응답을 받는 우리도 기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에게 기도 제목이 있습니까?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건강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자녀의 문제일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염려일 수도 있습니다. 그 기도 제목을 붙들고 원망하면서 기도하기보다 소망 가운데 감사하며 기도해 보면 어떨까요?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라고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지금은 어렵지만 지금까지 나를 도우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나를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해 보면 어떨까요? 마음먹는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원망을 통해 만나와 메추라기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과 감사 가운데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 있지만, 힘든 일을 만났을 때의 반응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까지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우리들은 의심의 반응, 원망의 반응이 아니라 응답하실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믿음의 반응을 하기 원합니다. 순간 올라오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붙잡고, 지난 삶 가운데 응답하시고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감사함으로 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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